그래도 왠지 관광지 한가운데는 비싸고 맛도 없을 것 같아서 약간 방향을 틀어 봅니다.
숙소인 호텔 DONI에서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치면 나타나는 작은 광장으로 갑니다.
어디서 먹을까 약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좀 많고 눈에 띄는 아무데나 골라 봅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너무 짠 파스타들만 먹어 지쳐버린 우리.
이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염분 수치를 걱정하며 약간 공포에 떱니다.
.
날씨도 정말 좋고 바깥에서 먹는 게 더 시원해보여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페스카토레 스파게티와 마르게리타 피자.
목이 마르니까 음료수도 하나 시킵니다.
......이런 게 나오는군요. 장난하자는 거죠.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의 사과 주스지만 갈증해소에는 도움이 안됩니다.
다니면서 항상 물 부족으로 허덕였던 이탈리아.
테이블에 기본 세팅되어 있는 빵.
이거 먹으면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맛도 없으면서 공짜인 줄 알고 먹었다가 번번히 낚였더랬습니다. 로마에서 이미 학습되어 있어서, 베네치아에서는 그래도 안 먹었어요. :)
우와우와.
가 먼저 나왔어요.
행복한 표정의 덩치군. 룰루랄라 피자를 자릅니다.
ㅠ.ㅠ 맛, 정말 감동이에요. 진짜.
이탈리아 피자의 특징인 얇고 바삭한 도우에, 아무 것도 얹어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도 신기하게 맛이 있는 피자. 피자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쫄깃하고......천상의 맛입니다. 이 이후로 베네치아에서는 마르게리타 피자만 계속 먹었네요. 제일 싸기도 하고.
후후.
페스카토레 스파게티.
로마에서 먹었던 것들과 달리 짜지 않고 맛있어요.
저 파란 식물은 호박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적당한 해산물과 야채들이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냅니다. 아아아. 맛있어.
#2. 해산물 튀김이 인상적(?)이었던 Ai Cugnai
페기 구겐하임 콜렉션을 보고 나서 굶주린 우리.
일단 또 밥을 찾아나섭니다.
몇 걸음 안 가서 약간 구석진 곳에서 발견한
Ai Cugnai.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깡인지는 모르지만 전혀 주변에 추천 받거나 하지도 않고, 여행 책자를 참고하지도 않고, 그냥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이성보단 본능에 충실한 여행.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뒷뜰 같은 곳으로 안내해 줍니다.
식당 내부에도 자리가 있지만, 왠지 구석진 뒷뜰에 박혀버린 느낌. 특이한 공간이었어요.
이번에는 봉골레 뽀모도르와 Mista라는 걸 시켜 봅니다.
Mista는 처음 보는 건데, 메뉴판의 영어 설명에 각종 해산물을 튀긴 음식이라고 하네요.
그래도 베네치아에 왔으니 왠지 해산물을 먹어봐얄 것 같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시켜 봅니다. 그랬더니,
이런 게 나왔습니다.
......이건 뭐 맛도 없고 감동도 없어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추석 때 차례상에 올리려고 튀긴 명태 튀김 맛?
여전히 염분에 충실한 튀김옷, 부실한 내용 구성,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동물들.
가격은 얼마였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저걸 보고 살짝 눈물을 훔쳤던 걸로 봐선 꽤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Mista는 이탈리아어로 Mix라는 뜻이니, 그냥 말하자면 해물모듬 정도의 음식이었습니다.
"난 튀김이 너무 좋고, 생선 본연의 맛만을 느끼고 싶어!"라는 분이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흐륵.
그래도
봉골레 뽀모도르는 맛있었어요.
짜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음식의 기준이 염분 함유량이 되어버린)우리나라에서 먹었던 스파게티들과 달리 이탈리아 현지의 스파게티들은 소스가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은 좀 걸쭉하다고 할까......로마도 그랬지만 베네치아 스파게티는 이렇게 소스가 거의 접시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건조하게 볶아냅니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나요.
상처 받은 맘 달래고자 큰 맘 먹고 디저트도 시킵니다.
상큼한 과일로 영혼이 살짝 치유가 되네요.
이 날의 음료수는 스프라이트.
매일 보는 스프라이트도 이탈리아어가 새겨져 있으니 다른 물 같아 보입니다.
iTune 이벤트 중이었네요.
제대로 된 해산물을 먹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75점 정도는 줄 수 있었던 Ai Cugnai. :)
#3. Via Garibaldi의 Hostaria all'Ombra
몇 번의 교훈으로, 아무래도 원주민의 지혜를 빌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덩치군이 호텔 직원
(아마도 주인 할머니의 아드님?)을 붙들고 근처에 맛있는 식당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호텔 바로 앞에 있는 da Roberto라는 곳과 좀 걸어가야 나오는
Hostaria all'Ombra라는 곳을 추천해주네요.
일단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약간 먼 곳으로 가보기로 합니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산 차카리아(S.zaccaria) 방향으로 작은 다리를 5개 정도 지나다보면 나오는 Via Garibaldi. 선박 역사 박물관이 있는 근처입니다.
그 길의 끝 쪽에 있다고 해서 일단 무작정 걸어 봅니다.
저녁이라 선선하고 좋네요.
아, 거리 발견.
Via Garibaldi, 가리발디 거리.
의외로 관광지 중심부를 조금 벗어나니 이렇게 식당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펼쳐지네요.
역시 원주민에게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거리의 끝에 있는
Hostaria all'Ombra 도착.
작고 아담한 곳입니다.
이번에는 식당 안에서 먹어 봅니다.
주인 할아버지가 참 지적인 외모를 가지셨어요. :)
세트 메뉴를 시킵니다.
먼저 수프. 그냥, 서양의 맛이에요. 한국인 입맛엔 패~스.
드디어 주 메뉴.
미트소스 스파게티.
이탈리아에서 먹은 파스타들 중에서 최고로 맛있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안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맛을 설명해야 할 지.
부족한 표현력으론 설명이 안돼요.
스파게티 먹을 때 핫소스가 없으면 못 먹는 폽이 스파게티 그 자체만으로도 한 그릇을 싹 깨끗히 비웠다고 한다면, 설명이 되려나요.^^
덩치군이 먹었던 슈니첼과 감자 튀김. 아아, 살 찝니다.
저녁 세트 메뉴를 시켜서 함께 포함되어 있었던 요리.
이름은 까먹었는데, 송아지의 간(!!!)으로 만들었다고 했나, 그랬어요.
(왠지 죄책감이 느껴져......)독특합니다. 이것이 원주민들이 먹는 생활 음식? 설마.
맛있게 먹었습니다아~.
명함도 하나 챙기고, 할아버지에게 생긋 인사하고, 부른 배를 잡고 룰루랄라 숙소로.
다른 가게들도 이렇게 세트 메뉴를 앞에 내걸고 홍보를 하고 있어요.
가격대는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전채와 메인, 샐러드 포함
세트 메뉴에 15~17유로 사이.
헉, Mixed Fried Fish, 여기도 있군요. (안 먹어!)
밥을 먹고 나오니 해가 졌습니다.
근처 다른 식당에서 아코디언 연주와 노랫소리가 들려 오네요.
같은 길이지만, 시간이 달라지니 색깔도 느낌도 달라집니다.
베네치아는 밤이 훨씬 좋았어요.
#4. 호텔 DONI 앞의 da Roberto
유럽 여행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비가 오던 날.
호텔 총각이 추천해 준 두 번째 집, da Roberto는 그 다음날 찾아갔습니다.
비가 오고 있지만 촉촉할 정도의 비라서 다들 바깥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어요.
우리도 빗소리를 들으면서 야외에 자리를 잡아 봅니다.
그냥 '
Pizza'.
아마도 마르게리타인 것 같지만, 메뉴에 그렇게 써 있어요. 피자. 8.5유로.
베네치아에서 처음 먹는
까르보나라.
재료가 화려한 우리나라 까르보나라에 비해, 역시 들어간 재료라곤 베이컨 뿐.
하지만 고소하고 쫄깃한 면이 최고.
della casa 와인.
델라 카사면 하우스 와인인가요?
어차피 둘 다 술도 약하면서, "이탈리아에 왔으니 화이트 와인 한 병은 마셔줘야지!"라는
쓸데 없는 호기 부리다가 또 헤롱거렸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도 좋다는 포비. 와인 잔이 무지 커서 마치 얼굴이 작은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찍고 보니 옷이 쵸큼 야해서(부끄), 사진을 댕강 잘랐어요. :)
마무리는 사랑하는
에스프레소로.
1.9유로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시간.
자리 값까지, 엄청나게 나와버렸군요. 쩝쩝.
그래도 이 음식들을 한국에서 먹으면 더 할 거다,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정말 너무 많이 달려버렸어요.
여행 경비 식비 예산 중 절반을 이탈리아에서 다 써버린 듯.
맛있게 먹다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네요.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저녁 하늘.
#5. 베네치아에도 있는 중국집, 海城
베네치아 마지막 날.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호텔에 맡긴 채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슬슬 피자 스파게티도 질리고, 뭔가 매콤한 게 먹고 싶었어요.
산 마르코 광장 근처에
해성이라는 중국 식당이 있더군요.
냉큼 들어가 봅니다.
좀 어둡고, 주인 아주머니가 우울해요. ㅡㅠㅡ;
하지만 밥 앞에서 행복한 이 남자.
......사실은 아직 잠 덜 깼는데 억지로 사진 찍어서 앙다문 입,이랄까요. 후후.
메뉴명,
Chiken salad. 느끼해요. 기름 듬뿍 친 양상치의 오묘한 맛.
Hot sour soup. 느끼해요. 국물이 먹고 싶었는데, 용암 같은 맛이었어요.
Sweet sour pork. 느끼해요. 탕슉일 줄 알고 시켰는데, 달고 느끼한 정체 불명의 음식.
......oTL. 이 날 여행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네요.
"중국 사람 나빠요."#6. 그 밖의 주전부리들
그렇게 극심하게 걷고 또 걷는데도 결과적으로 다이어트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 꼬박꼬박 주전부리들을 챙겨 먹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어떤 식당의 피자보다 더 맛났었던
Crazy Pizza의 2유로짜리 마르게리타 피자!!! 같은.
사람들이 한 손에 피자 한 조각씩을 들고 다니면서 먹길래 궁금해서 사봤는데,
정말 심 봤다!!! 라는 생각만이. 강추합니다. 베네치아 가면 꼭 드셔 보세요.
체면이고 뭐고 길에서 이렇게 먹게 됩니다. :)
그 밖에도,
천사가 만든 게 분명한 환상적인 젤라띠라든가,
귀여운 감자칩이라든가,
가격 대비 성능이 아주 뛰어났던 포도 같은 과일이라든가,
거리에서 팔던 컵 과일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칼로리를 충실히 채워 주셨죠.
특히 과일 가게들이 많고 좌판에 컵과일도 많이 팔고 있어서,
싸게 과일은 실컷 먹었던 것 같아요.
리알토 다리 근처에 많이 보이던 빵으로 만든 가면, 참 유머러스하죠. :)
강남에도 있었던가, 화려한 인테리어의 세가프레도(Segafredo)도, 여기선 그냥 작고 소박한 길거리 커피 가게의 느낌이었어요. 베네치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이탈리아제 브랜드'들이 다 그런 느낌이었죠. 명품점이 구멍 가게 같고. :)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하면, 이제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젤라띠) (피자) (에스프레소)아마도 여행을 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저 괄호 속 단어들은 각각 다르게 채워지겠죠.
여행에 에너지를 주고,
그곳의 향기와 시간을 떠오르게 해 주는 먹거리들.
그것들이 있어서 여행이 더 풍부해지고 즐거워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도시에선 어떤 음식들이 날 기다릴까?
생각만으로도 두근두근하네요.^^
To be continued......